티스토리 뷰
- 감독 : 엄유나
- 각본 : 엄유나
- 장르 : 드라마, 역사
- 개봉일 : 2019년 1월 9일
- 상영 시간 : 135분
- 관객수 : 285만 명
- 상영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말모이',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1941년 경성에 사는 판수는 얼마 전 직장을 잃었다. 그 후 아들의 학비를 위해 한 남자의 가방을 훔친다. 정환은 본의 아니게 판수의 희생양이 되어버리고, 그는 가방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판수를 뒤쫓게 된다. 정환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가방 속에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조선의 말들의 원고가 들어있었다. 정환을 비롯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그 말들을 엮어 사전 편찬을 기획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전국의 말을 모은 말모이 작전! 그런데 어울리지도 않은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된 불청객 판수는 글을 모르고 말의 가치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판수는 정환에게 글을 배우면서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한편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말모이' 작업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말 사전에 사투리까지 넣기 위해 판수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정환을 돕는다. 하지만 얼마 뒤 이들의 활동을 눈치챈 일본은 수많은 이들의 피땀이 배어있는 조선말 큰사전 원고를 압수한다. 위기에 빠지는 조선어학회는 극심한 감시와 탄압 속에서 오로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목숨을 걸었다. 과연 이들은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작전을 끝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자극적이지 않은 착한 영화 말모이
자극적이지 않고 순수한 영화 말모이! 2019년 개봉 당시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한국 영화까지 모두 100주년인 역사적인 해에 걸맞은 의미 있는 영화였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암살', '밀정', '동주', '박열' 등 좋은 영화들이 있었는데 특히 '말모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백성들의 힘을 보여준 영화가 아니었나 싶어서 굉장히 감동적으로 봤다. 영화 제목인 '말모이'의 뜻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영화 속에서 조선어학회가 전국의 말을 모으는 비밀 작전 이름이기도 한 '말모이'이다. 영화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민족 말살 정책으로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 경성이다. 학교에서도 우리말을 쓰거나 교육하는 것이 금지했던 시절이었다. 엄혹한 시대에 조선어학회가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었다. 사전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사투리와 말을 모으는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우여곡절이 영화 속에서 드러난다. 이전의 역사 영화의 경우 지나치게 잔혹하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는데 '말모이'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연출을 맡았던 엄유나 감독은 '택시운전사' 각본을 썼던 작가였다. '택시운전사'에서도 보면 광주 민주 항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평범한 택시 운전사 '만섭'이 우연히 휘말리게 된다. '만섭'은 그전까지 역사의식이 있었던 인물이 아닌데 역사적 사건 앞에 직접 목격을 하게 되면서 각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말모이' 역시 보통 사람 '판수'의 변화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소시민의 각성이라는 설정은 역사란 위인들의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선택이 만든다는 메시지를 준다. 이런 표현의 방식이 엄유나 감독의 특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동지애가 느껴지는 배우들의 연기
영화의 가장 중요한 대사 동지라는 말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동지의 뜻은 목적이나 뜻이 서로 같은 사람을 말하는데, 영화 초반 판수와 정환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류정환은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는 성향으로 백성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편견에 갇혔던 인물이다. 정환은 자신의 가방을 훔쳤던 판수를 조선어학회에서 만나면서 서로 마음에 안 들어한다. 하지만 나중에 정환이 판수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고, 사전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하면서 서로를 동료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영화 속 두 주인공인 배우 윤계상과 유해진은 근사한 케미를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은 2015년 영화 '소수의견'에서 선후배 변호사로 나왔었다. 국가라는 거대 골리앗에 맞서는 함께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의 영화다. '말모이'에서도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지만 서로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 주면서 좋은 케미로 나중에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 준다. 배우 유해진은 영화 초반에 특유의 유머를 표현하면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엄유나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당시에 '판수' 역의 배우로 유해진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전 '택시운전사'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던 엄유나 감독과 유해진, 그는 '택시운전사'에서도 친근한 광주의 택시 운전사 '태술'을 연기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정환' 역의 배우 윤계상은 '범죄도시'에서 강렬한 악역 '장첸'을 연기해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다음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반전의 캐릭터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말모이' 류정환이라는 인물로 등장을 해서 은테 안경에 멋있는 양복을 입고 모던 보이로 완벽한 변신을 했다. 영화를 빛낸 연기파 배우들이 영화의 구석구석을 잘 채워주고 있다. 아픔의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해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판수의 딸 '순희'는 빼놓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신 스틸러로 영화 곳곳에서 재미를 주는 캐릭터다.
영화 같은 실화가 주는 감동
영화 '말모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는데, 많은 부분을 실제 역사에서 비롯된 내용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말모이를 만들기 위한 첫 작업은 1911년 주시경 선생이 착수를 했다. 주시경(1876년~1914년)은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한글의 대중화와 근대화에 개척자 역할을 한 인물이다. 주시경 선생이 38살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그 후 주시경 선생 타계 후 뜻을 이어받아 1929년 조선어사전 편찬회를 조직하게 된다. 그리고 1936년 조선어학회가 창립되면서 뜻을 이어받아 사전 편찬 사업을 이어받아서 하게 된다. 영화 속 류정환 인물은 국어학자 이극로 선생을 모티브로 했다. 이극로(1893년~1978년)는 국어학자이자 정치인이었으며, 조선어학회 대표로 조선어 사전 편찬 집행위원이었다. 1969년부터 14년간 조선어학회 초대 간사로써 조직을 이끌었다. 영화 '말모이'를 통해서 이극로 선생이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영화 속 조선어 사전 편찬 사업이 여러 번에 걸쳐 위기를 맞는데 영화적 장치라고 생각할 있지만, 놀랍게도 실제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었다고 해 굉장히 놀라웠다. 실제로 사라졌던 원고가 1946년 9월 8일 해방 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어 사전으로 만들어졌다. 원고량은 26,500장의 방대한 자료로 실제 '우리말 큰사전' 원고가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이 되었다. 30년 넘게 계속 이어졌던 말모이의 결과물이 발견이 되어 '우리말 큰사전'을 완성하게 된다. 조선 잡지 '한글'에 실제 기재된 공고이며 큰 효과를 불러온 말모이 작전의 일환이었다. 그 당시 조선 민중들의 집단지성의 힘으로 만들어진 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엔딩 크레디트를 주목하다 보면 영어를 읽는 소리 그대로 한글로 썼다. 회사명이나 엔터테인먼트 이름에 영어가 들어가 있으면 모두 한글로 표기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순우리말로 만들어진 명대사
우리말을 지키는 영화답게 아름다운 우리말 대사가 가득한 영화 말모이! 영화에 소개되는 '민들레'의 어원은 문 주변에 흐드러지게 많이 피는 꽃이라 해서 '문들레'라고 부르다가 '민들레'가 되었다. 영화를 보면 같은 의미인 것 같은 '후려치다'와 '휘갈기다'의 차이를 '판수'가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엉덩이'와 '궁둥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판수와 정환의 재치 있는 설명으로 차이점을 알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니까 한 끗 차이로도 달라지는 정교한 우리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선조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영화였으며,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말모이는 우리말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인간에 대한 믿음의 이야기이며 배우 윤계상과 유해진의 투박한 동지애에 한글 사전 편찬의 실화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